ASEC 미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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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ASEC 미모자는 1948년 서아프리카, 레바논, 프랑스 출신 사업가 그룹에 의해 설립된 코트디부아르의 축구 클럽이다. 코트디부아르 프리미어 디비전에서 1963년 첫 우승을 시작으로 29번의 우승을 기록했으며, CAF 챔피언스 리그에서 1998년 우승, CAF 슈퍼컵에서 1999년 우승을 차지했다. 또한, ASEC 미모자는 아카데미 MimoSifcom을 운영하며 야야 투레, 콜로 투레, 디디에 조코라 등 많은 유명 선수들을 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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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루브 데스트로예스는 볼리비아의 축구 클럽으로, 프리메라 리가에서 두 번, 코파 시몬 볼리바르에서 한 번 우승했다.
2. 역사
ASEC 미모자는 1948년 창단된 이후, 프리미어 디비전 최다 우승(29회)과 1998년 CAF 챔피언스 리그 우승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1980년대에는 아프리카 스포츠에 밀려 리그 우승이 한 차례에 그치기도 했다.
2. 1. 창단 초기 (1948년 ~ 1970년대)
ASEC 미모자는 1948년 4월 29일 서아프리카, 레바논, 프랑스 출신 사업가 그룹에 의해 설립되었다. 클럽은 아비장-M'pouto의 ''Sol-béni''(성지라는 뜻의 프랑스어)라는 곳에서 시작되었으며, 이곳은 현재 클럽의 훈련 단지 이름이기도 하다.[2] ASEC는 아프리카 스포츠와 아비장 선수권 대회에 참가했으며, 1954년 프랑스인 가이 파브르가 첫 번째 프로 코치로 부임했다. 파브르는 "어린이들이 축구를 하면서 즐기게 하라"는 클럽의 철학을 만들었다.[3]1960년 코트디부아르 독립 이후, ASEC는 1963년 새로 창설된 프리미어 디비전에서 첫 번째 타이틀을 획득했다. 1970년대 초, ASEC는 1970년부터 1975년까지 6번의 리그 타이틀 중 5번을 획득하며 강세를 보였다. 이 시기에는 로랑 포쿠와 외스타슈 망글레와 같은 선수들이 활약했다.
2. 2. 로저 웨그닌 회장 시대와 전성기 (1980년대 ~ 2000년대)
1989년 11월 19일, 변호사 로저 웨그닌이 클럽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클럽을 전문화하려는 바람으로 1989년부터 1992년까지 필립 트루시에를 코치로 영입했다.[4] 이 시기 ASEC는 1990년부터 1995년까지 6번 연속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예전의 강세를 되찾았다. ASEC는 또한 1992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우승한 국가대표팀의 주축을 이루었으며, 벤 바디, 도널드-올리비에 시에, 바실 아카 쿠아메와 같은 핵심 선수들을 배출했다. 5번이나 준결승에 진출한 ASEC는 1998년 마침내 CAF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했다. 몇몇 선수들에게는 유럽 클럽과 계약할 기회였는데, 예를 들어 팀 주장 치에소우아 겔은 이후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에 합류했다.[4] 몇 년 후 ASEC는 2000년부터 2006년까지 7번 연속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자체 기록을 깼다.1993년, 전 프랑스 국가대표 선수 장-마크 기유가 이사, 매니저, 재정가로 클럽 스태프에 합류했다. 그는 회장 로저 웨그닌과 함께 ''Sol Béni''에 아카데미 MimoSifcom을 설립했다.[4] 그 후 몇 주 동안 그들은 코칭과 교육을 받기 위해 첫 번째 선수단을 구성하기 위해 수천 명의 어린 아이들을 스카우트하기 시작했다. 1999년, 1998년 챔피언스 리그에서 ASEC가 성공한 후, ASEC는 CAF 슈퍼컵에서 에스페랑스 스포르티브 드 튀니스와 맞붙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존 선수들은 나이가 많았고, 클럽을 떠났거나 최소한 떠나고 싶어했다. 그래서 기유와 웨그닌은 기존 선수단을 아카데미의 첫 번째 선수들로 교체하기로 결정했고, 그들 대부분은 17~18세 정도였다. 구단주들은 이 조치에 반대했고 에스페랑스의 회장 슬림 치부브는 이를 "아이들을 상대로 경기하는 스캔들"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젊은 ASEC 선수단은 놀랍게도 상대팀을 3대 1로 이겼고 클럽에 두 번째 국제 타이틀을 안겨주었다.[4] 부바카르 '코파' 바리, 콜로 투레, 디디에 조코라, 질 야피 야포, 시아카 티에네, 압둘라예 지레, 베낭스 제제, 아루나 딘다네 등이 그 선수단에 속했다.
2001년 기유가 벨기에 클럽 K.S.K. 베베렌의 감독이 되자 아카데미의 많은 선수들이 그를 따라갔다. 그 결과, 벨기에 팀은 수년간 주로 코트디부아르 선수들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베베렌을 유럽 최고 클럽에 재능을 보여줄 기회로 삼을 수 있었다.[4] 야야 투레, 아서 보카, 엠마누엘 에부에, 제르비뉴, 로마릭, 코파와 같은 선수들이 모두 베베렌에서 활약했다. 이는 2006년 기유와 베베렌이 ASEC 미모자와 결별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이후 ASEC는 찰턴 애슬레틱과 제휴했다.[5]
2. 3. 최근 역사 (2010년대 ~ 현재)
1989년 11월 19일, 변호사 로저 웨그닌이 클럽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클럽을 전문화하려는 목적으로 1989년부터 1992년까지 필립 트루시에를 코치로 영입했다. 이때 ASEC는 1990년부터 1995년까지 6번 연속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예전의 강세를 되찾았다. ASEC는 또한 1992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우승한 국가대표팀의 주축을 이루었으며, 벤 바디, 도널드-올리비에 시에, 바실 아카 쿠아메와 같은 핵심 선수들을 배출했다.[4] 5번이나 준결승에 진출한 ASEC는 1998년 마침내 CAF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했다. 몇몇 선수들에게는 유럽 클럽과 계약할 기회였는데, 예를 들어 팀 주장 치에소우아 겔은 이후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에 합류했다. 몇 년 후 ASEC는 2000년부터 2006년까지 7번 연속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자체 기록을 깼다.1993년, 전 프랑스 국가대표 선수 장-마크 기유가 이사, 매니저, 재정가로 클럽 스태프에 합류했다. 그는 회장 로저 웨그닌과 함께 ''Sol Béni''에 아카데미 MimoSifcom을 설립했다.[4] 그 후 몇 주 동안 그들은 코칭과 교육을 받기 위해 첫 번째 선수단을 구성하기 위해 수천 명의 어린 아이들을 스카우트하기 시작했다. 1999년, 1998년 챔피언스 리그에서 ASEC가 성공한 후, ASEC는 CAF 슈퍼컵에서 에스페랑스 스포르티브 드 튀니스와 맞붙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존 선수들은 나이가 많았고, 클럽을 떠났거나 최소한 떠나고 싶어했다. 그래서 기유와 웨그닌은 기존 선수단을 아카데미의 첫 번째 선수들로 교체하기로 결정했고, 그들 대부분은 17~18세 정도였다. 구단주들은 이 조치에 반대했고 에스페랑스의 회장 슬림 치부브는 이를 "아이들을 상대로 경기하는 스캔들"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젊은 ASEC 선수단은 놀랍게도 상대팀을 3대 1로 이겼고 클럽에 두 번째 국제 타이틀을 안겨주었다.[4] 부바카르 바리, 콜로 투레, 디디에 조코라, 질 야피 야포, 시아카 티에네, 압둘라예 지레, 베낭스 제제, 아루나 딘다네 등이 그 선수단에 속했다.
2001년 기유가 벨기에 클럽 K.S.K. 베베렌의 감독이 되자 아카데미의 많은 선수들이 그를 따라갔다. 그 결과, 벨기에 팀은 수년간 주로 코트디부아르 선수들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베베렌을 유럽 최고 클럽에 재능을 보여줄 기회로 삼을 수 있었다. 야야 투레, 아서 보카, 엠마누엘 에부에, 제르비뉴, 로마릭 그리고 부바카르 바리와 같은 선수들이 모두 베베렌에서 활약했다. 이는 2006년 기유와 베베렌이 ASEC 미모자와 결별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이후 ASEC는 찰턴 애슬레틱과 제휴했다.[5]
3. 클럽 문화
ASEC의 클럽 색상은 노란색과 검은색이며, 엠블럼에는 미모자가 묘사되어 있다. 아프리카 스포츠 내셔널과는 코트디부아르에서 가장 중요한 축구 더비를 벌이는 최대 라이벌 관계이다. 이 두 팀은 펠릭스 우푸에 부아니 경기장에서 홈 경기를 치를 수 있는 유일한 클럽이다.[9]
ASEC는 자체 발표에 따르면 코트디부아르에 8백만 명 이상, 지역 전체에 1,500만 명의 팬을 보유하고 있다. 팬들은 '액시오네르'라고 불린다. 이들은 40,000명의 회원과 350개의 위원회로 구성된 'CNACO' (Comité National d`Action et de Coordination|행동 및 조정 전국 위원회프랑스어)로 조직되어 있다.[9]
4. 아카데미 MimoSifcom
1993년, 전 프랑스 국가대표 선수 장-마크 기유가 이사, 매니저, 재정 담당으로 ASEC 미모자 클럽에 합류했다.[4] 그는 회장 로저 웨그닌과 함께 ''Sol Béni''에 아카데미 MimoSifcom을 설립했다.[4] 그 후 몇 주 동안, 그들은 코칭과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첫 번째 선수단을 구성하고자 수천 명의 어린 아이들을 스카우트했다.[4]
1999년, CAF 슈퍼컵에서 ASEC는 에스페랑스 스포르티브 드 튀니스와 맞붙었다.[4] 당시 ASEC의 기존 선수단 대부분은 나이가 많아 팀을 떠났거나 떠나고 싶어했다.[4] 그래서 기유와 웨그닌은 기존 선수단을 아카데미 출신 선수들로 교체했다.[4] 이 선수들은 대부분 17~18세 정도였다.[4] 구단주들은 이러한 조치에 반대했고, 에스페랑스의 회장 슬림 치부브는 이를 "아이들을 상대로 경기하는 스캔들"이라고 불렀다.[4] 그러나 젊은 ASEC 선수단은 놀랍게도 상대팀을 3대 1로 이기고 클럽에 두 번째 국제 타이틀을 안겨주었다.[4] 이 경기에서 활약한 선수들은 부바카르 '코파' 바리, 콜로 투레, 디디에 조코라, 질 야피 야포, 시아카 티에네, 압둘라예 지레, 베낭스 제제, 아루나 딘다네 등이다.[4]
2001년 기유가 벨기에 클럽 K.S.K. 베베렌의 감독이 되자, 아카데미 출신 선수들 다수가 그를 따라갔다.[4] 그 결과, 벨기에 팀은 수년간 주로 코트디부아르 선수들로 구성되었다.[4] 야야 투레, 아서 보카, 엠마누엘 에부에, 제르비뉴, 로마릭, 코파 등이 베베렌에서 활약했다.[4]
로제 우에닌과 장마르크 기유가 1993년 ASEC 훈련 시설에서 시작한 이 아카데미는 아프리카 축구의 보석으로 묘사되며, 이후 많은 국제적인 스타들을 배출했다. 선수 겸 학생들은 수학, 역사, 지리, 물리학, 프랑스어, 영어, 스페인어 수업을 받으며 교육을 받는다. 학생들은 주중에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하루에 두 번 훈련을 받고, 토요일에는 경기를 하며 건강 관리와 튜터링을 받는다.
5. 역대 우승 기록
ASEC 미모자는 1948년에 창단되어 코트디부아르 프리미어 디비전 최다 우승(29회)을 기록하고 있으며, 1998년에는 CAF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달성하기도 했다.
5. 1. 코트디부아르 국내 대회
5. 2. 국제 대회
ASEC 미모자는 여러 국제 대회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CAF 챔피언스 리그에는 총 15회 출전하여 1998년에 우승을 차지하였고, 여러 차례 준결승 및 조별 리그에 진출하였다. 아프리카 챔피언스 클럽컵에는 12회 출전하여 1995년에 준우승을 기록했다. CAF 컨페더레이션컵에도 9회 출전하여 여러 차례 조별 리그에 진출하였으며, CAF 컵 위너스컵에는 4회 출전하였다.
